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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야기’ 제35호] 분열의 시대, 다시 링컨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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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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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링컨전집》을 읽었다. 링컨이 열다섯 살 무렵인 1824년경에 남긴 메모부터 대통령 재임시기(1861년 3월~1865년 4월)의 기록까지 연대순으로 엮은 책이다. 내가 소장한 판본은 럿거스대 출판부가 1953년에 펴낸 전 8권의 전집(The Collected Works of Abraham Lincoln, 이하 《링컨전집》)이다. 이번 독서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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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전집(The Collected Works of Abraham Lincoln)

좌절의 고통을 통찰력으로 승화시킨 링컨

하나는 ‘우울한 링컨’이다. 예를 들면 1841년 1월 23일, 절친한 친구이자 동업자인 존 스튜어트(John T. Stuart)에게 보낸 편지에서 링컨은 “나는 지금 살아있는 인간 중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썼다. 자신은 “죽거나 혹은 더 나아지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고도 했다(《링컨전집》 1권, 229쪽). 당시 링컨은 훗날 영부인이 되는 메리 토드와의 약혼을 파기한 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메리 토드는 총명하고 야심 찬 여성이었지만, 성격이 불같고 감정의 기복이 컸다. 가난하고 내성적인 링컨은 그녀의 강한 성격에 압도되어 불행한 결혼을 두려워했다. 여기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겹쳤다. 결혼해도 불행하고 파혼해도 파멸한다는 진퇴양난의 심정이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링컨은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거듭 겪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 낸시를, 열아홉 살에 누이를, 스물다섯 살에 첫사랑 앤 러틀리지를 잃었다. 《링컨전집》에는 스무살 이전의 링컨에 대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를 보면, 일리노이주의 뉴세일럼에서 링컨은 여인숙 딸인 앤과 사랑에 빠졌다. 굿윈에 따르면 “앤은 링컨보다 몇 살 어렸고, 크고 표정이 풍부한 푸른 눈을 가진 갈색 머리의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는 링컨과 수풀 우거진 언덕에 올라가 길게 누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1835년 여름에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앤이 세상을 떠난 후, 링컨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말 없이 총을 들고는 혼자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도리스 굿윈 2007, 62). 그런 그가 메리 토드와의 파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와 딜레마에 부닥치자 잠재되어 있던 우울증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링컨은 어떻게 심각한 우울증 속에서도 균형 잡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첫째는 새어머니 세라 부시 링컨의 역할이다. 그녀는 링컨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마음껏 읽고 배우도록 지원해주었다. ”내가 본 최고의 아이었지요. 링컨은 손에 들어오는 책은 모조리 읽었습니다“라는 회고에서 보듯이(프레드 캐플런 2010, 37) 세라 부시는 어린 링컨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새어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신뢰는 그가 심리적 좌절을 견디는 바탕이 되었다.

둘째는 어린 시절 이야기꾼으로서 맛본 성취감이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흉내에 능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놀랍도록 잘 기억하는 재담꾼이었다. 밤마다 이웃과 손님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통나무집에 모여들었다. 어린 링컨은 그날 밤 들은 이야기를 이튿날 나무 그루터기에 올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자기 이야기에 빠져든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긍지와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 솜씨와 웅변 능력은 훗날 법조계와 정치계에서 큰 자산이 되었고, 우울을 견디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도리스 굿윈 2007, 56-57). 어머니의 지지와 이야기하기를 통한 자기 긍정이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준 셈이다.

셋째는 독서의 힘이다. 링컨은 아버지의 농장일을 돕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책은 그의 학교이자 대학이었다. 《성서》와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솝우화》, 윌리엄 스콧의 《웅변술 교습서》를 비롯해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여행 서적까지 두루 읽었다. 어디서나 책을 끼고 다녔고, 기억해둘 문장이 있으면 나무판자에라도 적었다. 판자가 글씨로 가득 차면 칼로 긁어내고 다시 썼다. 어린 링컨은 “지상에서 가장 평범한 변경의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발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역 경찰관에게 빌린 《인디애나 개정 법령집》이다. 그 안에 실린 독립선언서와 헌법은 훗날 링컨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농장주 조시아 크로포드에게 빌린 《조지 워싱턴의 생애》가 비에 젖자, 꼬박 이틀 동안 옥수수를 따 책값을 대신 치렀다는 일화에서도 배움을 향한 갈망이 엿보인다(도리스 굿윈 2007, 58).

링컨을 평생 괴롭힌 만성 우울증을 추적한 조슈아 솅크(Joshua W. Shenk)에 따르면, 링컨은 “아주 우울하고 슬픈 사람이었는데, 동시에 그는 유머가 풍부한 재치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193센티미터의 큰 키에도 구부정한 어깨와 긴 팔다리 탓에 위압적이기보다는 어수룩해 보였다고 한다. 앤 러틀리지가 세상을 떠난 지 약 20개월 뒤, 뉴세일럼을 떠나 스프링필드에 온 링컨을 만난 조슈아 스피드는 “그처럼 우울하고 슬픈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조슈아 솅크 2009, 65).

솅크가 주목한 것은 이러한 우울과 통찰의 관계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멜랑콜리는 무거운 짐이면서도 “삶의 이면을 읽고 문제의 본질을 알아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을 받아들여 견뎌야 하는지 탐색하게 된다는 것이다(조슈아 솅크 2009, 64, 14). 이 관점에서 보면, 링컨이 내면의 고통을 견디며 쌓은 자기 이해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권좌에 오른 뒤, 리더십의 시험대에 서다

이번 독서에서 새롭게 주목한 또 하나는 링컨이 내면의 고통을 견디며 쌓은 자기 이해가 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발휘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정적들의 집요한 공격과 노예해방으로 기득권을 잃게 될 이들의 증오를 어떻게 감당했는가. 그 속에서 분열된 연방을 지켜내고 노예제 폐지의 길을 어떻게 열었는가 하는 점이 리더십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링컨전집》은 대통령 취임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전반부는 초기 기록부터 1834년 일리노이주 의원 당선과 1860년 11월 대통령 당선을 거쳐 취임 직전까지를 담고 있다(1권 1쪽~4권 248쪽). 여기서는 ‘절반은 노예, 절반은 자유’인 나라의 모순을 짚은 편지가 눈길을 끈다(2권 317~318쪽). 미국인들이 영국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던 시절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만들어졌다”는 독립선언서의 금언을 자명한 진리로 여겼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노예가 될 염려가 사라지자 (노예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한 나머지 그 금언을 “자명한 허언”으로 여기고 있다는 링컨의 일갈도 인상적이다(2권 318쪽). 이러한 문제의식은 1858년 6월 16일 스프링필드 공화당 주대회에서 행한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유명한 연설에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2권 461~469쪽).

후반부는 1861년 3월 4일 취임을 위한 취임사 초고에서 시작해, 1865년 4월 14일 암살 사건 직전 방문객에게 통행증을 내주도록 지시한 ‘마지막 친필 메모’로 끝난다(4권 249쪽~8권 413쪽). 전반부가 가난한 시골 변호사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통령에 오르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대통령 링컨이 격랑 속에서 국가를 이끌어간 기록이다. 특히 후반부는 권좌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고 목적지에 이르는 일이 얼마나 더 어렵고 중요한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무게는 제1차 취임연설에서부터 드러난다(4권 262~271쪽). 링컨은 “연방은 헌법보다 훨씬 오래 된 것”이라며, 연방 탈퇴를 “폭동 내지 혁명행위”로 규정하고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남북전쟁 발발 직후인 1861년 4월 19일의 ‘봉쇄선언’부터는 전쟁을 수행하는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4권 338쪽). 널리 알려진 ‘게티스버그 연설’도 이 시기의 기록이다(7권 17~23쪽). 전쟁과 분열, 노예제라는 난제를 마주한 링컨의 리더십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다음 세 가지다.

듣고, 품고, 끝내 이루어내다

첫째, 링컨은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지도자였다. 세종이 백성을 직접 만나 국정의 길을 찾았듯이, 링컨은 병사들을 찾아가 전쟁의 현실을 살폈다. 예컨대 육군 총사령관 맥클렐런은 대통령의 부대 방문을 시간 낭비로 여겼지만, 링컨은 그의 무례와 방해에도 병사들을 찾아갔다. 장군들이 위험을 경고할 때도 방문을 마다하지 않았고, 특유의 익살로 병사들을 웃게 했다. 링컨 자신도 “장병들과의 만남에서 힘을 얻고 방향을 찾았다”(도리스 굿윈 2007, 512).

링컨이 만난 병사는 2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도리스 굿윈 2007, 708). 병사들은 그를 ‘자신들의 진정한 아버지’로 여기며,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만남은 위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링컨은 전쟁의 짐을 짊어진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그들과 나누었다. 백성과의 만남을 가로막는 신료들을 꾸짖었던 세종처럼, 그도 측근들의 보고 너머에 있는 현실을 직접 보려 했다.

둘째, 링컨은 자신에게 맞선 인물들의 능력까지 끌어안았다. 노예해방선언서 최초 낭독 장면에는 체이스, 스탠턴, 슈어드, 베이츠 등이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링컨과 경쟁하거나 그를 얕보았던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링컨은 정치적 배경과 성격이 다른 이들을 요직에 앉혀 국정의 책임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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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해방선언서 최초 낭독 장면 (1862년 7월 22일, 프랜시스 카펜터 作)
왜 굳이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을 곁에 두었을까. 링컨의 답은 분명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면 그들의 능력이 필요했다. “나와 짐을 함께 질 다른 유능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말에는 그의 위기의식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 링컨에게 포용은 국가의 과업을 함께 감당할 사람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성격이 정반대인 스탠턴에게 전쟁장관을 맡긴 것도 같은 판단에서였다.

셋째, 일을 이루어내는 놀라운 추진력이다. 링컨은 노예제 폐지라는 신념을 헌법에 새기는 데 정치력을 쏟았다. 나는 링컨이 수정헌법 제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킨 것을 그의 리더십의 결정판으로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인간 존중의 이상을 제도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이를 ‘정치적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다. 유형원이 《반계수록》에서 강조했듯이,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이룰 수는 없다. 뜻을 지속시킬 제도가 필요하다. 노예해방선언과 게티스버그 연설에 담긴 자유와 평등의 이상도 전쟁 이후까지 보장되려면 확고한 법적 토대를 갖추어야 했다. 노예제 폐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다른 하나는 그 이상을 실현할 표를 끝내 모았다는 점이다. 헌법 개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려면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했다. 링컨은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고, 회유와 정치적 거래까지 동원해 지지를 확보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2012년 개봉)은 바로 이 긴박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침내 개정안은 찬성 119표, 반대 56표로 하원에서 가결이 선포된 순간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의사당을 뒤흔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도리스 굿윈 2007, 738). 노예제 폐지가 헌법으로 확정되기까지는 각 주의 비준이 남아 있었지만, 결정적인 문턱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링컨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원칙을 붙들면서도, 그 원칙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정치의 복잡하고 거친 과정을 감당해냈다.
 

분단의 현실을 마주할 용기

《링컨전집》을 읽는 내내 떠오른 것은 한반도의 문제였다. 링컨은 “분열된 집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연설에서 노예제 문제를 회피하는 정치인들을, 거친 말에 올라탔다가 떨어질까 두려워 그저 토닥이고 쓰다듬기만 하는 기수에 비유했다(2권 465쪽). 갈등의 핵심을 외면한 채로는 분열을 넘어설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공존이나 통일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분단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평화가 가져올 이익을 따져보기보다, 논의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가 짙다. 2022년 7월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41%, ‘통일이 되지 않고 현재 상태로 살아가도 된다’는 응답이 56%였다. 이 수치만으로 인식의 변화 추세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위만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평화와 통일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며, 그 과정의 비용과 위험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를 사회적 의제로 올리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링컨은 노예제와 연방 분열을 둘러싼 껄끄러운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세종도 4군 6진을 개척하면서 백성의 부담과 행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신하들과 맞섰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영토"라는 역사적 명분을 제시하는 한편, 김종서처럼 북방 사정에 밝은 인물들의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반대 의견을 설득했다. 두 지도자는 명분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반대의 논거를 검토하며 실행의 길을 찾았다.

시대와 과제는 다르지만, 어려운 문제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오늘에도 유효하다. 정치인과 지식인의 책무는 불편한 의제를 피하거나 당위만 되풀이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듣고, 현상 유지의 비용과 변화의 위험을 함께 따지며, 감당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불안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와 이를 풀어갈 지적 성실성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세종은 북방 개척을 둘러싼 반대와 현실의 제약을 어떻게 넘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삼는 기틀을 마련했을까. 다음 호에서는 그 과정을 살펴본다.


<참고문헌>
A. Lincoln. 1953. The Collected Works of Abraham Lincoln / ed. by Roy P. Basler. New Brunswick : Rutgers Univ. Press.
A. Lincoln. 2012. <링컨 자서전, 명 연설문>. 차전석 번역. 서울: 나래북.
도리스 굿윈. 2007. <권력의 조건> 이수연 번역. 서울: 21세기북스. 
프레드 캐플런. 2010. <링컨> 허진 번역.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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