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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야기 1호: 대한민국 1%가 세종실록을 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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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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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가 세종실록을 읽는다면?

  

“세종 같은 리더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찌해야 하나요?”

  

 

얼마 전 식사 모임에 갔을 때 옆자리의 어떤 분이 던진 질문이다. 세종처럼 비전을 세워 구성원들의 눈을 모으고, 경청으로 인재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신뢰 어린 위임으로 일 맡은 사람들의 손발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뛰어난 지도자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씀이었다.

 

“역사 속의 이상적인 지도자를 찾는 일보다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시민의 공공성’을 연구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그분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내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테이블 앞쪽에 앉아 계시던 분이 대답하셨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발견한 것은, 세종은 때로 왕의 얼굴로, 신하나 장군의 모습으로, 또 때론 기업인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세종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했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왕의 덕목이 아닌 시민의 공공성 혹은 기업가정신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그분의 대답은 ‘세종이 어느 때나 존재한다’고, 내가 평소에 주장해온 ‘세종편재론(遍在論)’과 똑같은 같은 말이었다. 15세기에는 왕의 다움[德]이, 지금은 시민의 공공성이나 기업가의 리더십이 중요하니, 각각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때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못했던 것일까?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이 단지 왕의 리더십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25년째 <세종실록>을 붙들고 있는 걸까?

세종 이야기는 무의미하고 해롭기까지 하다?

 

 

내가 머뭇거린 것은 리더십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를 또다시 만났기 때문인 듯하다. 세종리더십은 국가의 최고지도자 내지 기업의 사장이나 임원에게나 필요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수시로 만나곤 한다. 세종리더십은 현대의 조직에 무의미하고 오히려 해롭기까지 하다는 말도 들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지금 왕조시대의 국왕 언행이 맞지 않을뿐더러, ‘세종대왕은 이랬다’고 옛날의 훌륭했던 사례만 자꾸 늘어놓으면, 현재의 대통령이나 회사의 상사를 거꾸로 비판하는 근거만 더해 주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이런 인식은 세종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었거나, 특히 드라마를 통해서 세종을 만난 분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가뭄이나 정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왕이 혼자 고민하며, 반대 의견을 물리치고, 결단하여 추진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런데 <세종실록>을 보면 그런 고독한 왕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의 것이고, 그 전에 사람들과 더불어 책 읽고 토론하며, 좋은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며, 계속되는 흉년 속에서 꼭 필요한 사업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끙끙대는 모습이 훨씬 자주 발견된다.

 

이치를 따지지 않고 일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원로 대신들의 사공적(事功的) 태도’와, 국정의 추진에는 눈 감은 채 성리학적 원리만을 내세우는 ‘젊은 선비들의 오활함’ 사이에서 일과 이치의 균형을 잡아가는 황희 정승의 역할은 실록에서 만나는 신선한 물줄기이다.

‘대한민국 1% 세종 리더십 운동’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 1%가 세종실록을 읽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총인구의 1%인 51만여 명이 세종실록을 읽고, 게 중에서 세종처럼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리더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1% 세종 리더십 운동’을 위해 내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 바로 세종실록 재번역이다. 물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미 세종실록을 번역해 놓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번역을 결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여러 차례 기존 국역본을 읽으며 실감한 한계 때문이다. 세종실록 원문에 담긴 통찰력 있는 문장과 풍부한 어휘가 제대로 살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대로는 세종의 정신을 제대로 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 15권 292쪽에는 세종이 이징옥 장군에게 보낸 글이 나온다.

 

“대저 장수가 되는 도리는 관용(寬容)과 엄격(嚴格)함을 아울러 쓰고 은덕과 위력을 같이 나타나게 해야만, 윗사람을 사랑하여 장상(長上)을 위해 죽는 공효를 거둘 수가 있는데…”

 

 이는 세종이 ‘관용과 엄격함을 함께 사용하라’고 당부한 대목이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함께 보면, 또 다른 깊이가 드러난다.

 

大抵 爲將之道 寬猛相濟 恩威竝著 然後 乃收 親上 死長之效
(세종실록 24년 6월 14일)

 

 여기에는 세 개의 한자 성어가 자리잡고 있다. 그 하나는 寬猛相濟(관맹상제)이다. 이 말은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것으로, '관대함과 엄함이 서로 도움 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한자는 親上(친상)이다. 이는 단순히 ‘윗사람을 사랑하여’보다는 ‘윗사람과 친해져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상하 관계를 인간적인 신뢰로 풀어내는 세종 리더십의 특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표현은 死長之效(사장지효)이다. 이는 ‘장상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효과’라는 뜻으로, 장수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는 용어이다. 한마디로, 세종실록은 그 뜻만 파악하고 넘어가면 놓치는 게 너무 많은 리더십 언어의 보고(寶庫)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

 

 

세종실록을 재번역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인재 쓰기에 관한 많은 이야기다. 세종은 재위 초반부터 정치를 잘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 확보라고 강조했다. “정치를 잘 하려면 인재 얻음이 가장 선무[爲政之要 得人爲最 · 위정지요 득인위최]”라며 뛰어난 인재 확보에 주력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庶事咸治·서사함치]”는 게 세종의 믿음이었다 (세종실록 5/11/25).

 

세종이 인재를 잘못 써서 후회하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권희달의 경우이다. 왕 대신 독이 든 약을 먹어보고 구토할 정도로 충성심이 높았던 권희달은,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23년 겨울, 세종 5년, 권희달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바친 말은 똥 싣고 다니던 말”이라고 말해 외교적 물의를 일으켰다. 심지어 명나라 자금성에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주먹질로 사람을 쫓아내며 ‘사신의 위의(威儀)’를 크게 잃기도 했다. 세종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잘못 알고 보낸 게 심히 후회된다”고 말했다(세종실록 6/3/21). 이 사건은 세종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인재는 개인적 충성심만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공과 사를 구분하고 맡은 바 책무를 끝까지 완수해야 진정한 인재가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를 기다리며

   

 몇 년 전, <로마인 이야기>를 15년 만에 완성한 시오노 나나미는 “나는 자신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으면서 아름다운 천을 만들어 나갔던 전설 속의 여인 ‘쓰(津)’와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 년의 절반을 자료를 얻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한다. 북아프리카에서 스코틀랜드 구석구석까지, 로마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다니며 고문서와 최신 연구까지 두루 섭렵했다.

 

나는 가끔 그녀가 조선왕조실록을 섭렵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실록은 작가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 ‘대한민국 1% 세종실록 읽기 운동’을 통해, 실록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 <한국인 이야기>라는 아름다운 천을 만들어 낼 뛰어난 작가들이 나타나기를, 세종 같은 리더가 나라 곳곳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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