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 1%가 세종실록을 읽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총인구의 1%인 51만여 명이 세종실록을 읽고, 게 중에서 세종처럼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리더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21세기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1% 세종 리더십 운동’을 위해 내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 바로 세종실록 재번역이다. 물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미 세종실록을 번역해 놓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번역을 결심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여러 차례 기존 국역본을 읽으며 실감한 한계 때문이다. 세종실록 원문에 담긴 통찰력 있는 문장과 풍부한 어휘가 제대로 살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대로는 세종의 정신을 제대로 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 15권 292쪽에는 세종이 이징옥 장군에게 보낸 글이 나온다.
“대저 장수가 되는 도리는 관용(寬容)과 엄격(嚴格)함을 아울러 쓰고 은덕과 위력을 같이 나타나게 해야만, 윗사람을 사랑하여 장상(長上)을 위해 죽는 공효를 거둘 수가 있는데…”
이는 세종이 ‘관용과 엄격함을 함께 사용하라’고 당부한 대목이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함께 보면, 또 다른 깊이가 드러난다.
大抵 爲將之道 寬猛相濟 恩威竝著 然後 乃收 親上 死長之效
(세종실록 24년 6월 14일)
여기에는 세 개의 한자 성어가 자리잡고 있다. 그 하나는 寬猛相濟(관맹상제)이다. 이 말은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것으로, '관대함과 엄함이 서로 도움 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한자는 親上(친상)이다. 이는 단순히 ‘윗사람을 사랑하여’보다는 ‘윗사람과 친해져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상하 관계를 인간적인 신뢰로 풀어내는 세종 리더십의 특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표현은 死長之效(사장지효)이다. 이는 ‘장상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효과’라는 뜻으로, 장수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는 용어이다. 한마디로, 세종실록은 그 뜻만 파악하고 넘어가면 놓치는 게 너무 많은 리더십 언어의 보고(寶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