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우울한 링컨’이다. 예를 들면 1841년 1월 23일, 절친한 친구이자 동업자인 존 스튜어트(John T. Stuart)에게 보낸 편지에서 링컨은 “나는 지금 살아있는 인간 중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썼다. 자신은 “죽거나 혹은 더 나아지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고도 했다(《링컨전집》 1권, 229쪽). 당시 링컨은 훗날 영부인이 되는 메리 토드와의 약혼을 파기한 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메리 토드는 총명하고 야심 찬 여성이었지만, 성격이 불같고 감정의 기복이 컸다. 가난하고 내성적인 링컨은 그녀의 강한 성격에 압도되어 불행한 결혼을 두려워했다. 여기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겹쳤다. 결혼해도 불행하고 파혼해도 파멸한다는 진퇴양난의 심정이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링컨은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거듭 겪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 낸시를, 열아홉 살에 누이를, 스물다섯 살에 첫사랑 앤 러틀리지를 잃었다. 《링컨전집》에는 스무살 이전의 링컨에 대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를 보면, 일리노이주의 뉴세일럼에서 링컨은 여인숙 딸인 앤과 사랑에 빠졌다. 굿윈에 따르면 “앤은 링컨보다 몇 살 어렸고, 크고 표정이 풍부한 푸른 눈을 가진 갈색 머리의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는 링컨과 수풀 우거진 언덕에 올라가 길게 누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1835년 여름에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앤이 세상을 떠난 후, 링컨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말 없이 총을 들고는 혼자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도리스 굿윈 2007, 62). 그런 그가 메리 토드와의 파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와 딜레마에 부닥치자 잠재되어 있던 우울증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링컨은 어떻게 심각한 우울증 속에서도 균형 잡힌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첫째는 새어머니 세라 부시 링컨의 역할이다. 그녀는 링컨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마음껏 읽고 배우도록 지원해주었다. ”내가 본 최고의 아이었지요. 링컨은 손에 들어오는 책은 모조리 읽었습니다“라는 회고에서 보듯이(프레드 캐플런 2010, 37) 세라 부시는 어린 링컨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새어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신뢰는 그가 심리적 좌절을 견디는 바탕이 되었다.
둘째는 어린 시절 이야기꾼으로서 맛본 성취감이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흉내에 능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놀랍도록 잘 기억하는 재담꾼이었다. 밤마다 이웃과 손님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통나무집에 모여들었다. 어린 링컨은 그날 밤 들은 이야기를 이튿날 나무 그루터기에 올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자기 이야기에 빠져든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긍지와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 솜씨와 웅변 능력은 훗날 법조계와 정치계에서 큰 자산이 되었고, 우울을 견디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도리스 굿윈 2007, 56-57). 어머니의 지지와 이야기하기를 통한 자기 긍정이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준 셈이다.
셋째는 독서의 힘이다. 링컨은 아버지의 농장일을 돕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책은 그의 학교이자 대학이었다. 《성서》와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솝우화》, 윌리엄 스콧의 《웅변술 교습서》를 비롯해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여행 서적까지 두루 읽었다. 어디서나 책을 끼고 다녔고, 기억해둘 문장이 있으면 나무판자에라도 적었다. 판자가 글씨로 가득 차면 칼로 긁어내고 다시 썼다. 어린 링컨은 “지상에서 가장 평범한 변경의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발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역 경찰관에게 빌린 《인디애나 개정 법령집》이다. 그 안에 실린 독립선언서와 헌법은 훗날 링컨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농장주 조시아 크로포드에게 빌린 《조지 워싱턴의 생애》가 비에 젖자, 꼬박 이틀 동안 옥수수를 따 책값을 대신 치렀다는 일화에서도 배움을 향한 갈망이 엿보인다(도리스 굿윈 2007, 58).
링컨을 평생 괴롭힌 만성 우울증을 추적한 조슈아 솅크(Joshua W. Shenk)에 따르면, 링컨은 “아주 우울하고 슬픈 사람이었는데, 동시에 그는 유머가 풍부한 재치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193센티미터의 큰 키에도 구부정한 어깨와 긴 팔다리 탓에 위압적이기보다는 어수룩해 보였다고 한다. 앤 러틀리지가 세상을 떠난 지 약 20개월 뒤, 뉴세일럼을 떠나 스프링필드에 온 링컨을 만난 조슈아 스피드는 “그처럼 우울하고 슬픈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조슈아 솅크 2009, 65).
솅크가 주목한 것은 이러한 우울과 통찰의 관계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멜랑콜리는 무거운 짐이면서도 “삶의 이면을 읽고 문제의 본질을 알아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을 받아들여 견뎌야 하는지 탐색하게 된다는 것이다(조슈아 솅크 2009, 64, 14). 이 관점에서 보면, 링컨이 내면의 고통을 견디며 쌓은 자기 이해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