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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자 칼럼 - 나이 일흔에 만난 세종 4] 세종이 주신 위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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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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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주신 위대한 선물

  1443년 12월 30일, 섣달그믐이었다. 《세종실록》은 그해 마지막 기사를 이렇게 기록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


  놀라운 기록이다. 1418년 왕위에 오른 뒤 25년 동안 세종은 새 문자를 만들겠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날, 느닷없이 세상에 없던 스물여덟 글자가 등장했다. 후대에 《세종실록》을 읽는 나도 허를 찔린 느낌인데, 당시 신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옷 한 벌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도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없었던 문자 체계를 임금이 아무도 모르게 새로 만든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세종은 문자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반대를 견디고, 학자들을 움직이고, 시험하고, 책을 만들고, 실제 행정에 사용하면서 새로운 문자를 살아 있는 문자로 만들어갔다.


  문자 창제에 필요한 역할을 은밀히 행하는 동안 조력자 몇몇은 있었겠지. 실록에 기록된 정인지 등 8인의 이름이 빛난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저항 세력들이 더욱 많았다. 훈민정음 창제 후 한글이 반포되기까지, 아니 영면에 이를 때까지 그 굴곡진 난항의 세월을 무어라 이름하면 좋을까. 얼마 전 본 영화 오디세이가 오버랩된다. 인간의 탐욕, 오만이 불러오는 시련, 불행은 매우 무심하여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이들만 치러내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오만을 깨 부스고 더 나은 위업을 행하려는 이들도 함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마는 것이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인간의 비극적 서사 전형이다. 오디세이의 배경이 바다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파도와 광풍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싸우려 하지 말고 흐름에 맡기라’는 영화 속 대사가 유독 귀에 들어온 것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기까지 지켜야 하고 견디어 내야 했던 온갖 도전과 역경을 참고 이겨내는 강인함과 유연함을 연상시킨다.

 

은밀한 '나홀로' 작전 

  세종 28년 9월 29일 훈민정음을 반포하기까지 세종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시련은 이루 형언키 어렵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등 과중한 업무로 심각하게 시력이 악화되었고 여러 가지 병증세에 시달렸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찾아오는 잇단 불행, 광평대군, 평원대군 두 아들이 사망하고 소헌왕후마저 떠나고 만다. 이런 총체적 비극 속에서도 세종은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함으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로 그 정체성을 자손 만대 공고히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세종의 뜻을 받들어 정인지 등 8명이 훈민정음 제자해를 저술하여 누구든지 혼자서도 쉽게 터득할 수 있게 했다고 정인지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 마침내 상세히 해석을 가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 최항(崔恒), 부교리 박팽년(朴彭年)과 신숙주(申叔舟), 수찬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李塏)· 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1443년 말에 훈민정음 창제를 발표하기까지는 세종의 은밀한 ‘나홀로’ 작전이 있었다. 그 후 3년간 집현전 학자들과 팀플레이를 통해 집단지식의 성과로서 이룬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체계와 “훈민정음해례”라는 해설서는 한글을 후세 미래 인류 자산으로 뻗어나가는 힘을 갖도록 했다. 그리고 그 힘은 새로운 시대로 갈수록,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빛났다. 한글 자체가 과학이고 기술이다. 분명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2026년 신작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한국어판에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한글을 알게 된 뒤,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체계적으로 설계된 문자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한글은 영어의 표기 체계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한글 점자’를 만든 박두성 선생은 “한글이 가진 우수한 구조 덕분에 점자로도 완벽하게 변신하여 시각장애인들의 세상을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보더라도 한글 체계는 수학처럼 원리와 공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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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1446년, 반곽 23.3×16.6cm, 간송미술문화재단. 국보 제70호 

한국인이면 마땅히 배워야 하는 ‘훈민정음’

  한글이 디지털 문화에 최적화된 문자일 수밖에 없고, 한글 창제자인 세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AI 시대를 잘 살기 위한 길이다. 세종실록을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클러드 등 AI를 잘 쓰려면 ‘질문을 잘하라’고 한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도 한다. 그래서 문제인가? 세종처럼 질문하고, 세종처럼 인재쓰고, 세종처럼 AI를 쓰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우리 교육과정에서 세종과 훈민정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건 참 이상하다.

  2026년은 한글 창제 583주년, 한글 반포 580주년이 된다. 그리고 ‘10월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다. 한국인이면 마땅히 ‘훈민정음’과 ‘훈민정음해례본’을 자세히 배워야 한다고 본다. 훈민정음 정신, 세종 어제, 정인지 서문을 초등, 중등, 성인 단계에 맞는 교재로 만들어 쉽게 접하고 배우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한글의 제자원리를 알게 되면 기하학적 과학적 디자인 기술이 보인다. 천지자연의 주역적 이치도 깨닫는다. 훈민정음 어제(서문)와 정인지 서문을 통해 글의 논리와 명료한 글쓰기, 문장의 품격을 배울 수 있다.

세종이 지금 대한민국의 통치자라면 그분은 AI를 이용해 엄청난 성과를 이루고 문제 해결도 원만하게 해냈을 것이다. AI도 국민이 쉽게 익혀 일상에서 쓰는 데 편안하게 할 것이다. 세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AI 기반 시뮬레이션, 다각도 검증 등을 거쳐 시험하고 법제화, 제도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AI 검증도 병행하여 인사를 매우 효과적으로 잘 했을 것이다. 인재를 양성하고 인재를 쓰는 데에 세종처럼만 하면 만사가 무난할 텐데. 장영실 같은 사람, 최윤덕 같은 사람, 이예, 허조, 황희, 집현전 학자 같은 현대 한국인을 적소적재 용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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