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대전 세종실록 리더십 세미나' 개최 - 2024.07.30 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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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대전 세종실록 리더십 세미나' 개최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 강연
"세종의 설득·소통 리더십 21세기에 본받아야"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은 29일 대전 테크노파크 어울림플라자에서 열린 '대전 세종실록 리더십 세미나'에서 "한글 창제에 담긴 세종대왕의 소통과 설득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홍재화 기자]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세종의 소통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장은 29일 대전 테크노파크 어울림플라자에서 열린 '대전 세종실록 리더십 세미나'에서 "한글 창제에 담긴 세종대왕의 소통과 설득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며 이같이 말했다.그러면서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사관들처럼 우리말로 대화하고 한자로 기록하는 이중 언어생활을 했거나,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에 처했을 것"이라며 한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대전 세종실록 리더십 세미나는 과학기술연우연합회 주관으로 마련된 P-MC 세미나다. P-MC 사업은 Project Mini Cluster의 약자로 대전테크노파크에서 지원하는 고경력과학기술인 활동 생태계를 구축하고, 산업체와의 연계를 도모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번 세미나는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세종의 리더십의 핵심을 살펴보고, 이를 고경력과학기술인들의 역량 강화에 적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총 4회 진행된 세미나의 마무리로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이 어떤 난관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깊이있게 살폈다.이날 세미나를 진행한 박현모 원장은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로 손꼽히는 세종·정조 전문가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우리 사회 리더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 박 원장은 '경국대전의 정치학', '정약용의 군주론 : 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정조와 순조' 등 80여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한글은 조선시대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해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 문자다. 어려운 한자를 빌려 문자로 사용할 경우 민족의 정서는 물론이고 정확한 정보 기록과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일반 민중은 말 이외에 의사를 기록하고 전달할 방법이 없게 된다. 박 원장은 "세종은 지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 리더"라고 말했다.한글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모양을 본뜬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적인 음운학 연구를 토대로 누구나 습득할 수 있도록 만든 문자로,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문자이다.이날 박 원장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故 제임스 맥콜리 교수가 매년 한글날에 모든 수업을 멈추고 한글날 파티를 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맥콜리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글날은 언어학자들의 영광을 위한 유일한 날이기 때문에 파티를 열었다"고 설명했다.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효과적인 발음 표기, 민중 동향 파악, 백성의 자의식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대응,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중 박 원장은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한글 창제의 주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약노 사건을 소개했다.약노 사건은 세종 재위 15년 째인 1433년에 황해도 곡산에 사는 여자 양민 약노가 주문을 외워서 사람을 죽였다는 혐의로 투옥된 건이다. 당시 약노가 준 밥을 먹고 사람이 죽었는데 담당관청에서는 약노의 자백을 받기 위하여 형벌을 수없이 가하였고, 약노는 고문과 매 때림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주문을 외워서 그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박 원장은 "법을 모르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백성들의 사례를 접한 세종이 앞으로는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한글 창제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종은 지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 리더"라고 평가했다. 한글 창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글 창제를 둘러싼 세종과 신하들의 치열한 논쟁 과정이 세종실록을 통해 확인된다. 세종은 1443년 12월 한글 창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한글 창제에는 세자와 종친, 그리고 집현전 소장파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최만리 등 노장파 신하들은 한글이 중화 문명을 거스른다며 강력 반발했다.세종은 1444년 2월 '훈민정음'으로 중국 운서를 번역하게 함으로써, 한글의 우수성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일부 대신들의 반대가 계속되자, 세종은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음양오행 원리에 부합하는 과학적 문자임을 논증했다. 결국 세종의 논리적 설득에 반대파들도 수그러들었고, 결국 국가 공식 문자로 자리 잡았다.박 원장은 "한글 창제 과정에서 보여준 세종의 소통과 설득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큰 귀감이 된다. 합리적 토론으로 의견을 모으는 리더십이 21세기 한국에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어 "유교적 교양을 갖춘 세종은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백성을 국가 발전의 근간으로 여기며 존중했다"며 "이는 합리적 소통과 다름에 대한 포용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야 할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그간 세미나는 총 4회에 걸쳐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세종이 이룬 다양한 업적과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세종 리더십의 근원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또 오늘날 정부출연연구기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집현전, 세종대왕과 신하, 집현전 학사들의 경연 방식 등에 대하여 논의하기도 했다. 600년전의 문제해결방식과 소통방식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를 어떻게 오늘날 현실에 맞게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세미나에는 과학기술연우연합회 소속 고경력과학기술인 등과 함께, 세종의 철학을 도입하는데 힘쓴 이규호 한국화학연구원 전 원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중의 한명인 한규남 한우리기독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했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며 "현재 재직중인 대안학교에 커리큘럼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